라니아의 아버지는 명재상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어질고 총명할 뿐 아니라 매우 검소하여,

그를 따르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포장된 겉 모습일 뿐

실제 그는 매우 음흉하며 간계를 잘 꾸미고 가족들에게는 매우 포악한 사람이었다.








한편 황후가 황태자를 낳은 후 계속 아이를 유산하자 

재상을 비롯한 신하들은 후궁을 들이라며 왕을 압박해 나갔고, 

결국 황제는 재상의 딸을 포함해 총 3명의 후궁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라니아는 재상의 셋째 딸로 어린 나이에 나이차가 두 배 가까이 나는 

황제의 제1후궁으로 입궁하였다.








그러나 황제는 신하들에게 반발이라도 하듯 후궁들을 무관심으로 대했다.








라니아가 입궁한 지 3년이 흐른 어느 날, 

황제가 황후를 데리고 사냥을 떠나 궁이 한산해지자 

검은 음모의 기운이 스멀스멀 황궁의 벽을 타고 스며들기 시작하는데..


그날 밤 라니아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어릴 적부터 곁에 있었던 그녀의 호위기사와 금기를 넘기고 말았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임신 징후를 보이자마자 재상은 

그녀를 찾아와 아무 걱정 말라며 다독여 주었다.

입궁 후 딱 한번 내방하여 황제의 마음도 얻지 못하냐고 

호되게 야단만 치고 갔던 아버지였기에

임신했음을 알게 되자 이제 죽는 일만 남았구나 했던 라니아로서는 매우 뜻밖의 상황이었다.








재상은 그녀에게 임신사실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자신을 믿고 기다리면 곧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로부터 며칠 후 건강했던 황제가 갑자기 쓰러지더니 며칠을 시름 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이후 황제 시해범으로 유배를 떠났던 황태자가 유배지에서 독살당하고,

그 소식을 들은 황후까지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궁 안의 분위기는 더더욱 침울해졌다.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자

라니아는 모든 일이 아버지의 계획하에 이뤄졌음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더불어 자신의 임신까지도 의도적이었음을 유모를 통해 알게 되었다.








유모는 재상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라니아와 

호위무사에게 [여신의 묘약]을 탄 음료를 주었던 것이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라니아는 재상을 비난했지만 돌아온 건 폭언과 협박뿐이었다.

아이를 무사히 낳지 않을 경우 라니아 주변사람들이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말에 

라니아는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라니아의 뱃속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 황제가 죽은 후 7달 만에 사내아이로 태어났다.

재상은 전 황제의 측근들과 가까이에 있었던 시녀들을 모두 죽임으로써 

어느 누구도 새로운 황제의 정통성을 의심할 수 없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서 갓 태어난 황제를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재상은 제일 먼저 황태자였던 드레이크가 여왕의 숲에 [아르겐스톤]을 숨겼다는 정보를 접하자 

숲 여기저기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여왕의 숲은 점점 황폐화가 되어갔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재상은 황제가 11살이 되던 해에 병으로 죽고 말았다.








이후 라니아는 귀족들과 협상끝에 아들이 스무살이 되면

황제의 자리를 물러주기로 하고 여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라니아의 아들은 황태자가 되어 라니아와 호위기사의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훌륭하게 성장해갔다.








평화로운 나날도 잠시, 요정 여왕의 분노 때문일까?

나라는 이상기후 등으로 인해 기근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죽은 줄 알았던 진짜 황태자가 살아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라니아는 어린 아들의 미래를 위해 악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로부터 수년 간 라니아는 드레이크를 죽이기 위해 

암살자를 보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드레이크에게 딸이 하나 있음을 알게 된 라니아는 그의 딸을 납치하기로 했다.

한편 기근이 오래 지속되자 여왕의 체제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나라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태자는 반란 지도자들을 만나 해산하라고 요청했지만 

폭력적인 행위는 계속되었고 군중들은 부유한 귀족들의 저택을 습격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황태자는 반란군을 무력으로 제압하기 시작했으나 싸움도중 크게 다쳐 죽고 말았다.








라니아는 아들의 죽음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으나 

차가워진 그의 시신을 확인하자 오열하고 말았다.

그녀의 인생에서 유일한 빛이자 희망이었던 아들의 죽음은 

라니아를 악마의 화신으로 변모하게 만들었다.








광기로 휩싸인 그녀는 우선 암살자를 보내 반란군들의 수장들을 죽이고 

군대를 동원해 혼란에 빠진 반란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반란군들은 처음에는 궁지에 몰렸지만,

드레이크와 그가 데려온 용병들이 가담하면서 차츰 전세가 역전되었다.








거기에다가 진짜 황태자가 라플란드를 구원하기 위해 돌아왔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반란군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한편 여왕에게 납치된 블리스는 비록 감금 되어 있지만 

예상외로 깨끗한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받았다.

블리스는 도착 후 곧바로 여왕을 알현하기로 했지만, 

갑작스런 황태자의 죽음으로 여왕과의 만남은 뒤로 미뤄졌다.








라니아의 원래 목적은 블리스를 미끼 삼아 드레이크를 죽이려고 했지만, 

황태자의 죽음으로 그녀의 계획은 방향감을 상실해 버렸다.

또한 그녀의 군대는 진짜 황태자인 드레이크의 등장으로 

군을 이탈하는 군인들이 속출하면서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사면초가에 빠진 라니아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곧바로 성안의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마지막으로 블리스를 만났다.








블리스는 라니아로부터 그녀의 파란만장했던 삶,

그리고 블리스가 그 동안 궁금했던 모든 것들을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이야기를 끝낸 라니아는 블리스를 비밀통로로 내보낸 후

궁 안 여기저기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인 황궁은 활활 타오르며 모든 것들을 태워 나갔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전부 재가 되어 사라져갔다.










이년 후

드레이크는 황제로 등극한후 그 동안 모아두었던 모든 재산들을 쏟아 부어

[여왕의 숲]을재건하는데 힘을 썼다.

백성들 또한 자발적으로 돕기를 자청하면서 라플란드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 넘치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그들의 정성이 요정의여왕을 감동시켰던 걸까?

이상기후를 보였던 날씨는정상화되면서 농사는 대풍년을 이뤄냈다.











오랜만에 [바람 부는 언덕]으로 돌아온 블리스를 반갑게 맞이하는 한 여인.

부풀어 오른 배를 감싸안고 호위기사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는 바로 라니아였다.










그날 블리스는 궁을 빠져나가는대신 불을 지르는 라니아를 기절시키고 나서 호위기사를 향해 울부짖었다.

"여왕님이 이대로 죽는 것은 너무 불쌍해요. 여왕님을 사랑하시잖아요제발 저와 함께 탈출해요."









무사히 탈출한 블리스는 드디어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가 갖고 있었던 보석이 왕가의 보물임을 알게되자 너무나도 기뻐하며 아버지에게 건네주었다.

감격적인 재회를 마친 블리스는 조심스럽게 여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녀를 살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드레이크는 블리스가 무사히 살아있음을 감사드리며,

그녀의 부탁대로 여왕일행이 라플란드를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썼다.

물론 그 과정에서 라니아는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으나,

호위기사와 블리스의 간절함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블리스, 당신 덕분에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었어요. 정말 고마워요."